카멜레온 > 자유게시판30 > 필리핀어학연수 필리핀나라는 ?
 

 

자주묻는질문

 
작성일 : 12-09-25 14:32
필리핀어학연수 필리핀나라는 ?
 글쓴이 : 유학그리기
조회 : 1,402  
수도
수도는 마닐라 이다. 육지 면적은 약 30만Km² 이고, 남북으로 최장길이는 약 1,850KM,이며, 동서로 가장 넓은 곳은 약 1,125KM 이다. 태평양에 둘러 싸여 있으며, 동쪽은 필리핀해, 남쪽은 셀레베스 해, 남서쪽은 술루 해,, 서쪽은 남중국 해 와 접한다. 2개의 주요섬은 북부에 있는 면적 104,688 Km² 의 루손섬과 남부에 있는 면적 94,630 Km²의 민다나오 섬이다. 필리핀 중부의 비샤얀 제도는 파나이, 네그로스, 세부, 레이테, 사마르 섬으로 구성되며, 민도르 섬은 루손섬 바로 남쪽에 있고 필라완 섬은 서부에 따로 떨어져 있다. 인구는 71,539,000 이다 (1997)
자연환경
비교적 큰 섬들 대부분 휴화산과 산맥들이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다양한 지형 분포를 보인다. 대부분의 섬에서 군데군데 중단되는 좁은 해얀 평야와 대체로 북쪽을 흐르는 강들을 볼수 있다. 바이 호 를 제외하고는 루손섬 및 민다나오 섬의 큰 호수들은 모두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라구나데베이 호는 면적 922 Km²인 필리핀 최대의 호수로서 마닐라 남동쪽에 있으며 한때 마닐라만의 한쪽부분이었던것으로 추측된다. 루손섬 북북에는 동쪽은 시에라마드레 산맥과 연결 되고 서쪽은 센트랄 산맥과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그 가운데 비옥한 카가얀 강 유역이 펼쳐져 있다. 루손섬 중부에서 이들 산계 가 합쳐지는 지점을 중심으로 카가얀 강 하곡과 그 이남에 있는 면적 19,200 Km²의 비옥하고 인구가 조밀한 중앙 평원지역으로 나뉜다. 마닐라 시는 이 평야 남단 마닐라 만에 형성된 천연 항에 있다. 루손섬 남동부에 있는 나선형 반도는 고립된 화산들과 불규칙한 산괴 및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다. 울퉁불퉁한 민 다나오 섬은 5개의 주요 산계와 크고 작은 많은 만과 반도로 대단히 긴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는 복잡한 지세 이다. 필리핀 최고봉인 해발 2,954M 의 아포 산에서는 민다나오 섬 제 1의 도시인 다바오가 내려다 보인다. 필리핀은 주로 해발 고도에 따라 기온이 다른 해양성 열대기후를 나타낸다. 마닐라의 연 평균 기온은 27℃이다. 서부는 뚜렷한 건기를 보이지만 열도 전체는 대체로 강수량이 충분하며,태풍이 빈번하게 북부 동해안을 강타한다 전국토의1/3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으며, 소나무를 포함한 연질 목재들뿐만 아니라 나왕(필리핀산 마호가니)과 같은 값진 경재들도 많다. 필리핀 원산 동식물로는 800여 종의 남초와 56종 이상의 박쥐를 꼽을수 있다. 광물자원이 풍부하며, 금 은 철광석 구리 남 크롬철광 니켈 망간 석회암을 매장량은 상당하다. 매장량이 얼마 안되는 석유 매장지들이 팔라완섬 근해에 모여있다.
국민
필리피노로 불리는 대다수 주민들은 주로 중국인과 혼혈이거나 미국인 또는 스페인 계와 혼혈인 말레이 인종이다. 공식 언어는 타갈로그어[전체 인구의 1/3이 마닐라일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기초로 한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그밖에 전체인구의 1/4이 사용하는 세부아노 어를 비롯해서 이롤카이노 어 , 힐리가이노 어, 비콜 어 등 수십종의 다른 언어들이 쓰인다. 인구의 4/5 이상이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고 이슬람교도 들도 상당수 있다. 가톨릭 계의 필리핀 독립교회파(아글리파이파)신교도 약간 있으며,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 개신교 주요종파도 있다. 인구밀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고 인구의 35.9%가 15세 미만이다. 1970년대부터 시행된 가족계획사업은 특히 시골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가 66세 여자가 70세 이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이동은 특히 대도시 마닐라에 심각한 과밀 현상을 초래했다. 전체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해외로 나가는 수많은 이민 가운데는 고도로 숙련된 인력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민 가는 사람과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간에 균형을 유지 하고 있다.
경제
필리핀 경제는 주로 농업, 경공업, 서비스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정부의 간섭이 늘어나긴 했지만 시장경제가 지배적이다. 물가는 구매력보다 더 빨리 상승된 반면 임금은 동 아시아에서 최저 수준이다. 실 성장률이 마이너스 상태인 1인당 국민 총생산(GNP)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슷하다. 총 노동력의 2/5 이상이 종사하는 농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1/4을 차지한다. 농민의 다수가 소작농이며 국토의1/4 이상이 경작에 적합하나 관개시설이 부족하다. 정부와 여러 국제기구들이 관개농지를 넓히려는 여러 사업을 후원하고 있지만 농업의 자급자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쌀이 주요 농산물이며, 몇몇 섬 에서는 옥수수 재배가 주종을 이루기도 한다. 쌀의 경우 다양한 개량종들이 선을 보였고 다량의 비료가 현재 사용되고 있지만 산출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굴지의 코코넛 생산국으로 코코넛 열매와 코프라 뿐 아니라 코코스야자유를 주로 수출한다. 사탕수수, 바나나, 파인애플 등도 널리 재배되며, 외화 수입원으로써 종래의 마닐라삼과 담배를 대신한다. 만연된 불법 벌목행위와 아직도 존속하고 있는 이동농경 방식 때문에 필리핀의 삼림은 계속 고갈되고 있다. 질 좋은 목재와 베니어판이 일본, 영국, 미국 등지에 대량으로 수출된다.광업은 GDP에서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구리, 금 , 철광석 등은 외화 수입원으로 적지 않은 몫을 한다. 제조업은 GDP의 1/4 를 차지하며 총 노동력의 1/10을 고용한다. 주요 제조업으로는 식품가공, 음료, 석유제품, 섬유, 신발 등의 생산이 손 꼽힌다. 정부는 전기 및 전자 기기 조립 업 을 포함한 노동집약형 산업의 육성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도로는 1/7정도만 포장되어있으며, 마닐라와 막탄 섬의 세부 근교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필리핀 제 1의 항구는 마닐라에 있다. 그러나 수송의 하부구조가 빈약하여 늘어나는 농산물량을 처리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전기 및 전자제품과 부품 코코넛 제품, 의류, 과일과 야채, 설탕과 설탕제품 등을 수출하며, 광물연료, 자본재, 곡물, 화학제품 등은 수입한다. 무역수지는 종종 역조 현상을 보인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과 일본이고 해외근로자들이 보내는 송금이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정부의 예산지출은 전통적으로 수입을 초과해 왔지만 1994년을 넘어서며 흑자로 돌아섰는데 외채는 1980년 이후 갑자기 늘어났다
정치사회
1987년에 재정된 필리핀 헌법 (1973년에 제정되어 1981,1984년에 개정된 헌법을 대신함) 에 따라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행정권을 행사한다. 대통령은 6년 단임제로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대통령이 임명한 각료들로 이루어진 내각이 국가의 일상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입법권은 221명의 하원의원과 24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의 필리핀 의회에 부여된다. 하원의원은 각 선거구에서도 선출되지만 많은 수가 임명되며, 상원의원은 대체로 선출 된다. 사법부 최고기관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는 대법원 이다. 정당들에 내려진 계엄령이 1978년에 해제되었고, 1980년대 중반 이후로 파르티잔의 정치활동이 활발하다. 필리핀 이슬람교도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단체와 공산주의자가 이끄는 불법 정치조직도 활동하고 있다. 보건시설과 의사들은 외곽 시골 지역보다 마닐라에 약 15배나 많이 있다. 영양실조가 만연되어 있고, 보건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 현재의 시설과 요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다. 주택난이 심각하며 공유지 무단 거주자들이 모여 사는 몇몇 공동체(특히 마닐라 주변)에는 기본적인 보건, 위생 시설도 없다. 문자 해독률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높다. 6년제인 초등교육은 공식적으로 의무 교육이며, 공립학교에서는 무상교육이 실시되어 대부분의 아동들이 혜택을 받는다. 대부분 20세기 초에 설립된 다수의 대규모 종합 대학교들이 마닐라에 집중 되어 있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필리핀어, 영어 및 그 외 수많은 지방어로 신문이 발간된다. 필리핀 전역에 걸쳐 많은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다.
문화
필리핀은 수세기어 걸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반세기 동안 지속된 미국의 통치하에서 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동남아 고유의 정신적 지주는 뚜렷하게 남아있다. 스페인 식민지시대에도 많은 필리핀 노래와 춤이 유지되거나 재 해석되었으며, 바야니한 과 같은 합주단들은 이러한 전통 예술을 공연하여 전 세계의 청중들에게 널리 알려왔다. 민간 전승의 구전들은 우주의 기원에 관한 전설과 신화들을 풍부 하게 담고 있으며, 스페인의 정복에 연관된 이야기들도 포함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 생산하는 독특한 목각품이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역사 1000년경부터 중국 상인들이 필리핀의 여러 섬을 방문 하고 거주 했다고 전해지나 중국과 인도 양국이 끼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15세기 초 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 이동농경, 사냥 ,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으며 정령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1521년 페르난두 마젤란에 의해 유럽인들이 필리핀을 발견했으며, 뒤이어 16세기 말엽 민다나오 섬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교가 소개 되었다. 이 무렵 필리핀 북부와 중부 전 지역이 무력으로 스페인 식민지가 되면서 모든 주민들은 명목상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민다나오 섬 및 좀더 남서쪽에 있는 술루 제도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인 모로족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마닐라의 중앙정부는 19세기까지도 중세적,독재적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마닐라 시 역시 압제적인 종교 중심지로서 여러 섬들을 지배하는 한편 상업 중심지로서 중국의 비단 멕시코의 은의 중계항 역할을 했다 1830년대부터 마닐라는 외국 시장에 문호를 개방했고, 설탕과 마닐라삼에 대한 유럽의 수요를 충당하는 과정에서 상업적 농업이 크게 성장했다. 19세기말 유럽 유학 중 민족주의 사상에 고무된 필리핀의 부유한 지주층의 자녀들이 귀국하여 1896폭동사건을 일으켰으나 스페인 군대에 진압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뒤 필리핀 제도는 미국에 할양되었으나 필리핀 내 독립운동은 1906년 까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국은 처음부터 필리핀의 자치와 궁극적 독립을 위해 필리핀 국민을 훈련 시키겠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합리화 했다. 1935년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꾀하기 위해 필리핀 연방이 수립되었지만 이러한 노력은 제 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일본의 침략과 점령 때문에 지연 되었다. 필리핀은 1944~45년 미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후, 1946년 7월 4일 미국 정부를 본뜬 정부를 세우고 필리핀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마누엘 로하스가 선출 되었다 1965년 패르디난드 E.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선출 되었고, 1969년에는 최초로 필리핀의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1972년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속 집권했으며, 계엄령을 공식 해제한 1981년부터 대통령령으로 통치했다. 1983년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S.아키노 2세가 귀국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되자 마르코스 정권에 대항해온 반(反)정부 세력의 저항이 더욱 격렬해졌다. 이런 난국을 모면하려고 1986년 2월 앞당겨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마르코스는 야당후보이자 베니그노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를 누르고 공식 승자로 선포되었지만 마르코스의 명백한 부정선거는 폭동을 야기시켰고, 이 폭동으로 그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마르코스 축출 직후인 1986년 2월 25일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아키노 정부는 출범 당시의 기대만큼 정국 안정과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다.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가 1991년 말 6년간의 망명 생활 끝에 귀국하여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 하기도 했으나 마르코스 정부 전복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피델 라모스 국방장관 (前군참모총장서리) 이 아키노의 지지에 힘입어 1992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사
1949년 3월 3일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54년 1월 양국에 상주공관이 설치되었고, 1958년 2월에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북한과는 미 수교 상태이지만 1970년 이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실리노선을 취하면서 북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요 협정으로는 소포우편협정(1960.8), 무역협정(1961.2), 문화 협정(1970.8), 경제기술협력협정(1983.2), 투자증진보호 협정(1994.4)등이 체결되어 있다. 6.25 전쟁에 참전했고 1981년 7월 , 1994년 11월 우리나라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으로 양국간의 교역 및 경제협력이 더욱 강화 되었다. 건설 부문에서 각별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신발, 자동차부품,전자제품 분야의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1996년의 대한 수출액은 5억 8.113만 달러이며 대한수입액은 19억 602만 달러이다 . 1997년 현재 교민은 1,500명 체류자는 6,499명이다.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data/session) in Unknown on line 0